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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점을 주고 싶은 소설이다. 많은 지인들이 읽고 추천해줬지만, 조금은 외면했던 책이었다. 이유는 없다. 추천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참 성질머리가 고약한 것이 사람들이 환호하면 조금 외면해버린다. 사실 박민규의 소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가 표지로 쓰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먼저 접했다.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의 연애이야기는 충분히 독특했으며,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묘사하던 박민규라는 사람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에야 읽은 그의 처녀작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보니, 비주류(못생긴 여자를 비주류라고 표현해서 욕먹을지도 모르겠지만, 연애시장(?)에서 만큼은 그렇다고 가정하고…)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깊은듯하다. 그리고 이 가벼움 속에 묻어있는 무거운 고찰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대단하며 박민규라는 작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세상에 다양한 소설이 있지만, 나는 성장소설이 제일 좋다. 국적에 상관이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가 좋았고, 헤르만 헤세의 글들이 좋았다. 일부 파울로 코엘료의 책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최근에 들어와서 이런 편향성이 더욱 심해진다. 어느덧 서른에 성큼 다가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어쩔 때는 작가가 묘사한 인물의 성장과정에서 무언가 겹치지는 잘못된 내 삶의 단편을 문득 깨닫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더 큰 공감을 함께 하며 읽었다. 왜냐면 지난 4개월간 나는 철저하게 백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바쁜 회사원이었던 적은 없지만…) 4개월간 나에게는 시간이 철철 넘쳤으며, 내 자신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 어쩌면 프로들의 세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아마추어로 집안에 칩거하며 내 감정선의 변화를 주시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많은 글을 읽었으며, 많은 글을 썼다. 친구들은 취직과 연봉을 높이는 일에 열을 올렸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생을 사는지 회사의 인생을 사는지 모른 채로 푸념을 늘어놨다. 반면교사로 삼고 나는, 조금 덜 치열하더라도 앞으로 무엇을 하든, 세상에 만들어진 기준을 쫓아가기 위해서 나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내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서 부단히 고민했다. 마치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나만의 리그에서 나는 열심히 였다.

 

           이 소설은 창단이래 만년 꼴찌만 하던 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하찮았던 성적과 기록들이 마구 나열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꿈을 키웠던, 혹은 현실을 배웠던 어린 소년들의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 이후는 어른으로 치열하게 지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의 프로세계를 비꼬며 담아내고 있다.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잘 못함을 참 부끄러워한다. 아니 뭐든지 참 잘하는 것이 뒤집어보면 신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정받아야만 하는 프로들의 세계에 자신을 등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한 것을 부각시키고 자랑하기에 여념 없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자랑을 아니꼽게 들으며 그들처럼 해내지 못한 자기자신을 비난하고 주눅들어 한다. 갑자기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생각난다. 누구도 프로세계로 우리를 떠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이놈의 성과사회에서 자기자신을 프로세계에 밀어 넣어 몸값을 올리기 위해, 혹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며 모두의 환호를 받기 위해서, 그냥 무작정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p.278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냐고. 사실 눈치를 봤다기 보다는 어쩌면 어머니, 아버지가 바라오셨던 아이가 되기 위해서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싶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공부를 잘하면, 이 소설에도 나오는 듯, 주변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기 일수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지면, 주변에서는 실망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나에게 쏟던 기대와 칭찬을 순식간에 거두어갔다.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남들과 비슷한 일과 공부를 하면서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이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에 들어와서 수많은 여행을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삼천포에 빠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 많은 일탈이 나를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누구를 만나도 나를 포장하는 그 어떤 수치나 경력이 아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더 비주류가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더 많은 삼천포에 빠져서 인접학문과의 접근성을 높여야겠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늘 창의적이고 독특한 나만의 목소리로 인간답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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