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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학교 근무시간에 인터넷으로 팟캐스트 방송을 받아서 고요한 밤 집에서 열심히 팟캐스트를 듣는 재미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라오스 생활 초기에 인터넷 비용이 부담돼서 집에 인터넷을 넣지 않고 살던 때의 이야기다. 장하준 교수가 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제목을 보면, 문득 그 때 장하준 교수가 팟캐스트 동영상을 통해서 책에서 다룬 각 주제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해외를 나가보면,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장하준 교수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 주장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하고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게 될 기회가 많아진다. 내가 살아오며, 여행하며 혹은 해외에서 체류하며 겪었던 사건들과 엮어서, 이 책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나는 경제를 공부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경제를 선택했던 게, 공식적인 경제학 공부의 전부다.) 경제학의 세세한 이론이나 계산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신문을 읽으면서 혹은 누군가와 현재의 경제적인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많지만, 물어서 상대방이 설명해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다.) 지금의 나는 조금은 능동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의 나는 조금은 수동적이었다. 질문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교과서에 나오는 말은 모두 정해진 진리처럼 생각했던 경향이 있다. 사업가로서 열심히 일하시던 아버지는 학위적으론 배운 것이 많지 않으셨지만, 열심히 사셨으며 능력이 있으셨기 때문에 우리집 형편은 나름 풍족한 편이었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으며,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 당시까지 나는 사회라는 큰 테두리까지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배포가 없어서 내가 똑똑하고 합리적이면, 내가 잘 살고 내 가족이 잘 살고 내 친구가 잘 살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더 다양한 의견을 알지 못한 채) 기업친화적이고,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됐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다니기 전에 읽었던 책과 여행에서 본 삶의 풍경들은 자유시장이 정말 좋을까에 대한 의문점을 던져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에 1,000원을 못 버는 사람과 그런 물품마저도 깎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왜 수많은 관광객들이 생겼고, 그로 인해서 장사는 잘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의 질 자체는 전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는 모습이 지속되는지 궁금했다. 학부시절 우연히 들은 중남미 경제 수업과 중남미 정치 수업에서 교수님은 논문을 최종 과제로 정했다. 내 주제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PT당 즉 노동당을 등에 업은 채 당선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앞선 까르도수 대통령이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선택하게 되는데 관한 주제였다. 중남미국가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선택했지만, 경제는 박살이 났다. 2000년대 브라질의 초고속 성장이 룰라 대통령의 힘도 있지만, 중국의 성장으로 인한 원자재수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라 대통령이 퇴임 시,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지율을 보인 점은 그가 취한 복지정책과 적절한 정부의 행동이 아니었을까라는 점을 중심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개발도상국에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며 현지인들과 함께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해본 시간을 통해서 깨달은 점은 언제나 나의 시선이 너무나도 순진무구(naive)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도 그렇다. 앞서 썼던 저탄소의 음모를 읽을 때에도, 국제회의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정치적 견제를 보며, 환경문제 또한 너무나도 순진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던 나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 중에 심히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 첫째로 스웨덴의 버스운전기사가 인도의 버스운전기사보다 운전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국의 경제상태와 이민정책 등의 이유로 더 높은 임금을 받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라오스에서 근무하던 때, 물론 내가 학교로부터 월급을 받았던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고등학교 선생님 20년차 이상의 월급과 그 무엇도 아니던 사회생활 1년차 내 월급의 차이는 1:5를 넘어가는 비율이었다. 물론 내가 가르쳤던 컴퓨터분야는 라오스에서는 잘 없는 직종이기도 했지만, 나는 한국정부로부터 월급을 받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컴퓨터분야를 제외하고 학생을 다루고, 관리하고, 기타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잡일에서 나는 다른 어떤 선생님들보다 능력면에서 열등했었다. 심지어 청소능력조차도 선생님보다 떨어졌다고 인정하고 싶다. , 능력과 상관없이 선진국 사람들은 비싼 돈을 받고 있다는 점은 지극히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라는 점이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직도 뭐라고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에도 심히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기업가 정신을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와 열정 그리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자기 집에 아무 잡동사니라도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팔 수 있는 정도의 의지를 가진 라오스 사람 쪽이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목을 메는 한국보다 기업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고 판단된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이집트에서 다이빙 일을 하던 시절, 같은 가게에 근무하던 이집트 잡일 하던 청년들과 선진국에서 온 가이딩 하던 청년들과의 대화를 들고 싶다. 이집트 친구들은 지금은 이래도 언젠가 내 다이빙센터를 차릴 생각을 하는 반면, 선진국에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은 또 어느 나라의 어느 가게로 속할까를 생각하고 있던 점이 생각난다. 기업가가 더 많아야 잘 산다고 혹은 좋은 사회라고 정의할 수 없지만, 수많은 사회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드는 집요한 사람들은 늘 회사원보다는 기업가 쪽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뭐든지 대기업 위주의 안정적인 사회구조 속으로 편입되려는 선진국의 미래보다는 확실히 앞으로의 개도국의 미래가 더 밝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마지막으로 교육에 관련된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부분은 동의하고 일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다. 장하준 교수는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라고 말하며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교육을 확장하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Thing 17)라고 말했다. 물론,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 교육의 결과가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는 제도를 먼저 정비하는 일이 저자의 말처럼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더욱 차이가 난다. 나는 다양한 분야로의 관심이 사람들의 눈을 확장시킨다고 믿는다. 그 확장은 아이디어의 충돌로 인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고, 이는 경제개발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다고 생각한다. 라오스에 2년 가까이 있다가 갑자기 태국의 대형서점에 가서 깨달은 일이 있다. ‘떠오른 국가에 가보면 다양한 잡지가 없는 나라가 없다.‘ 돌이켜보면 인도도 자국어로 잡지가 있고, 태국도 있다. 브라질은 물론, 기타 다른 국가들도 (언어가 영어나 스페인어가 되어서든 뭐든) 다양한 분야로 잡지가 세분화 되어있다. 다양한 잡지라는 현상은 한 사회의 개인들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잡지가 나오기 위해서는 출판업이 전제되어야 하며, 출판업은 한 국가의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후에 일했던 유네스코에서 읽어봤던 자료들을 보면 전후 한국에 유네스코가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도, 교과서 보급과 학교재건 운동을 재빨리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관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한국은 그런 배움이라는 기반 위에 지금의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불편하다는 것은 일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반대되는 딴지를 걸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일수다. 물론 이쪽저쪽으로 휙휙 날아다니면 안되겠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의견이 합리적이라면 우리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준 교수의 책은 늘 그렇다. 앞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나는 그 책을 신자유주의 까기라고 평가했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으면서 이 책은 단순히 자유시장을 일방적으로 까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의 책은 늘 기대된다. 풍부한 수치와 독특한 주장(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들이 저자가 참 즐거우면서 섬세하고 진지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자유시장을 깐다고 좌파라는 식의 논리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모두를 넘어서 더 나은 대안을 위한 의견제시, 학자다운 면모를 지닌 것 같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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