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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른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간혹 이 블로그에 어떤 콘텐츠를 작성해볼까를 고민할 때, 뒤늦게 대학원과 관련된 글들을 작성하는데 재미가 붙은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몇 가지 떠올랐던 대학원 생활에서 마주했던 일들을 나열해볼까한다. 오래된 일이라 지금은 시스템이 다를 수 있음에 주의해주시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래 그림에서 나의 교수님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반쯤 신" 유형에 가까우셨던 것 같다. 

 

누가 그렸는지 몰라도 너무나 적절한 짤

 

환경대학원에 진학 후 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민에 빠지는 것은 1학기를 지난 후 2학기 때 어떤 교수님의 연구실로 들어갈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저마다 대학원 입학의 문턱에서는 나름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을 것이고, 나름 교수님들의 연구분야까지 파악하며 꿈을 찾아 오겠지만, 실제로 1학기 동안 다양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메우게 된다. 그래서 학생들끼리도 나는 어느 교수님을 생각하고 왔지만, 직접 수업을 들어보고 하니 저 교수님이 나에게 더 맞는 것 같아 등의 대화가 자주 오가는 것을 첫 학기가 끝날 무렵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는 다른 대학원들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인데, 환경대학원이 가진 특수대학원이라는 위치 때문에 가능한 넓은 선택의 폭이다.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쁘고...

어쨌든 환경대학원에 진학하고 나면, 교수님과 연구실을 선택하는 기로에 누구나 서게 된다. 이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이라는 소속이 되고 나면 더이상 환경대학원이라는 네임 밸류 보다는 나를 지도하실 교수님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앞으로의 진로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후에 박사를 가게 된다면, 아니면 어떤 기관에 지원을 하게 된다면 나의 지도 교수님이 나의 추천서를 작성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학문적 성과와 인간 됨됨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한다. 사실 환경대학원의 장점 중 하나가 교수님들이 모두 인성이 훌륭하시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어디를 가서, 어떤 대학원 출신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지점 중 하나이다. 지도 교수를 선택한다는 것은 짧게는 2년 동안 길게는 약 5~7년까지 앞으로 나의 학문적 어머니이자 아버지를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첫 학기를 들으면서 많은 고민을 해야한다. 장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대학원 생활의 희노애락과 성패를 모두 결정짓는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지도교수라는 점이다.

 

 

 


지도 교수를 선택하는 기준

 

1. 학문적 관심

 

아무래도 저마다 대학원에 오는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동기는 학문적 관심일 것이다. 그래서 지도 교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연구 분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환경대학원의 장점은 첫 번째 학기에 그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는 것이다. 환경대학원 학생을 기준으로 본다면 첫 번째 학기에는 관심 있는 교수님들의 수업을 가능하면 꼭 하나씩 수강하는 것을 나는 권하고 싶다. 물론 도중에 교수님과 섭섭한 관계를 감수하고 연구실을 바꾸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그래도 2학기 때 정하는 지도교수님과 그 연구실의 연구주제는 앞으로 본인이 가는 길의 뿌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면 평생 여기에서 들은 수업과 쓴 논문들이 나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정말 내가 관심이 있고 잘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나로서는 당시 국제기구에서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에 에너지라는 주제를 정책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연구실과 국제적인 환경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의 수업을 중심으로 들었고, 내가 개도국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보고 배웠던 것들과 연관해서 점점 더 그 주제에 흥미를 느꼈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운이 좋았고, 어떤 친구들은 본인이 관심있어 했던 주제가 실제 연구의 수준으로 오니 기대한 것과 달라서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슬퍼할 일은 아닌게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기가 끝날 때 즈음, 학문적인 큰 갈래를 정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환경관리를 기준으로 보면 1)환경 정책, 2) 환경 경제, 3)오염물질, 4)수자원 정도로 구분할 수 있었다. 나처럼 문과출신이 3번과 4번으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나는 당시 국제 환경정책에 어렴풋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관련 된 연구를 주로 하시던 교수님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2. 지도 교수의 역량과 인성

 

환경대학원에 한해서는 모든 교수님의 역량이 뛰어난 분이라고 나는 자부한다. 하지만, 아주 간혹 두 가지의 분야에서 갈팡질팡할 때는 교수님의 역량과 인성, 가치관 등이 선택의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어차피 세부적인 어떤 주제를 연구할 때 교수님들도 그 주제를 모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교수님들은 함께 공부를 하시게 될 가능성이 발생한다. 그럴 때 교수님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나의 연구를 네트워크적으로 교과 외적으로 지원을 해주시는 타입이신지, 혹은 논문을 함께 써주시는 타입이신지, 논문의 구성에 대해서도 지도를 해주시는지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은사님께서 학생들의 논문을 적극적으로 지도해주시고 피드백 주시는 점을 아주 만족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의 부지런함과 언행일치의 모습들. 그리고 실제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그와 일치하는 학문적 주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본인의 논문을 비롯 학생들이 졸업 논문을 저널로 게재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와 편집하시는 등 이미 그러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으셨음에도 학문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늘 노트를 들고 다니시며, 건방지게 학생들도 팔짱끼고 듣는 발표를 그 작은 노트에 연필로 빼곡히 메모하며 연구자료들을 모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내가 후배들의 대학원 입시를 도와주거나, 논문에 조언을 해주거나, 혹은 내가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초를 탄탄히 만들어주신 분이 나의 지도 교수님이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바쁜 교수님에게 지도를 잘 못받는 것 같다며 불평하고, 누군가는 교수님의 간혹간혹 스쳐가는 무관심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 나는 많은 대학원 졸업자들을 만나보았고. 나의 은사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복받은지 알라는 소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졸업 1년 뒤 어느 새벽 2~3시 쯤 해외로 보낼 추천서 한 장을 요청드린 적이 있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 8시에 영문으로 빼곡히 작성된 내 추천서가 와 있었다. 다 훌륭한 교수님이지만, 지도 교수를 잘 선택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여러 교수님의 연구실 미팅에 첫 학기에 꼭 시간내어 참석하여 선배들의 분위기를 꼭 살피라고 하고 싶다. 신입생들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주어진다. 최대한 지금 연구실 선배들이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지 보고, 그들의 얼굴 표정과 생생함, 교수님과의 관계 등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정도만 충실히 해도 선택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기준 3: 졸업 후 미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 후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에 대한 예측은 정말 어렵다. 우리 지도교수님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면, 에너지 정책학을 공부하셨지만 당시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뚜렷한 정책적 합의가 없을 때 박사학위를 받으셨다고 한다. (이건 내 연구원 시절의 상사였던 박사님도 동일했다). 그런데 갑자기 교토의정서와 관련된 사항들이 중요해지고, 2007년 4차 IPCC 보고서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적응의 중요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 분은 예상했던 것 보다 빠르게 정교수가 되시고, 주목을 받는 연구자가 되셨다.

 

졸업 후 미래는 사실 내가 몸담고 싶은 분야를 잘 선택하고 훌륭한 분 밑에서 잘 큰다면, 최소한의 평균치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걱정할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졸업 후 10년 안에 그 분야가 드라마틱하게 중요해진다면, 이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순간순간 나타나는 사회적인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나보다 먼저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탐구한 좋은 지도자 밑에서 학습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환경대학원의 교수님들은 정말 한분 한분 인성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훌륭한 분들이 많다. 그러니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그것을 배워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1번, 그것을 이루는데 가장 힘을 보태줄 교수님이 누구인지를 잘 고르고 선택하는 것이 2번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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