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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가 현대사회 속 현대인의 모습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진단하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시간의 향기>는 머무름의 기술이 부족한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피로사회>가 풀어주지 못했던 현대인의 생활과 시간, 사유에 대한 고민을 그 전작인 <시간의 향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루스트, 하이데거, 아렌트 등의 철학가들의 사상을 다시 고찰하며 그들이 시간의 흩어짐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점과 시대상의 한계점을 되짚으며, 사색적 삶을 잃고 진정한 안식을 모르는 현대인의 삶을 진단하고 비판하며, 사색적 삶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한병철의 책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피로사회>를 읽은 후로 시간이 제법 흘러버려서 두 책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비교해서 제시하기는 좀 무리지만 두 책은 결론적으로 현대인의 피로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비판,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리즈 책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사회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한다. 택배는 총알배송이 필수이며, 하루라도 배송이 늦으면 인터넷에 배송이 느리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무언가 궁금하면 직접 고민을 해보기에 앞서 인터넷 검색창에서 바로 답을 찾기 바쁘다. 연애문제로 마음이 아프면 상대방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오래 해보고 이야기를 해볼 생각보다는 인터넷으로 고민을 털어 놓으며,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조용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고 있다. 음식은 패스트푸드로 음식에 대한 정성이 없는 알바생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생산되어 화폐를 통해서 즉석으로 교환되어버린다. 속도는 돈이고,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시간은 중심을 잃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버리고 있다. 도시를 돌아보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로가 설계되고, 판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의 건물이 지어진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늘 쫓기는 것인가? 알차게 잘 계획해서 살아낸 것 같은데 왜 우리의 시간은 흩어져버리는 것일까? 손에 남는 것은 없고 휙 지나가버리는 시간에 대한 경험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경험이다. <시간의 향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겪는 시간의 흩어짐과 가벼움 대한 철학적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간에 향기가 없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시각과 청각이 만연하는 도시사회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갈수록 시간은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자연의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에게도 생체리듬이 있기 마련이거늘 우리를 둘러싼 삶의 공간은 이제 자연적인 순환이나 리듬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게오르그 짐멜이 100여 년 전 이야기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짐멜에 따르면 수많은 자극의 노출로 신경과민증에 노출되는 현대인은 자기방어의 기제로 둔감해진다. 시각과 청각은 이러한 삶을 구성하는 감각이다. 속도감이 있으며 불시성을 지닌다. 순간순간 사라지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우리의 삶의 형태나 생각의 형태도 그렇게 형성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에 대한 지속성의 경험은 매우 진귀하면서도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우리의 삶과 행동, 생각은 다양하게 흩어져버리는 시간과 함께 일정한 방향성이나 중심이 없이 사라져 버린다. 동시에 수많은 일을 해야 하며, 하나의 생각이나 행동, 경험 속에 우리는 머무르지 못해버리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후각의 느낌은 느리며, 한 곳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감각이다. 우리는 향을 더 빨리 맡고 싶다고 해서 더 빨리 맡을 수 없다. 지속적인 경험이나 사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후각화 되어 대안이 되어 한병철에 의해 제시된다.

 

 

          황농문 교수가 ‘몰입’에서 Work hard가 아니라 Think hard라고 강조하던 말이 생각난다. 사실 그 메커니즘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Work hard의 경우는 생각을 많이 하기보다는 무언가 답이 나오기를 바라며 생각하기보다는 몸을 움직여 떼우는 ‘활동적인 삶’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Think hard의 경우는 한병철이 <시간의 향기>와 <피로사회>에 걸쳐서 제시하는 ‘사색하는 삶’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며,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이 무언인지를 알 수 있는 삶이다. 그래서 ‘시간의 향기’를 되찾는 일은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사고를 극대화 시키며,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더 효율적이고 활동적으로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본다. ‘요즘 바빠’, ‘~도 하고, ~도 하고’, ‘빡빡한 만큼 배우는 게 많아.’ 등의 말이 아주 많다. 물론 본인도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쁜 사람일수록 능력이 있거나, 나중에 더 잘될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가하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점점 더 바쁜 척 하며, 더 바빠지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을 자신이 계획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일에 이끌려 시간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의 향기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활동적 삶’ 중심의 가치관을 ‘사색적 삶’ 중심으로 바꾸지는 않더라도 절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힐링을 위해서 좋은 아포리즘을 읽고 기분만 잠시 좋아지고, 무언가를 소비하며 찾는 자기 힐링이 아닌 내 삶이라는 길 위의 여정을 향기 나게 할 수 있도록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의 향기>는 바쁘게 지냈음에도 공허함이 가득한 시간을 보며 아쉬운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시간의 가치를 긁어모아 삶의 방향을 잡고 진정한 자기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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