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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닿는 한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줄곧 아파트에 살았다. 스무 살이 넘어서 서울에 올라와서도 줄곧 아파트에 살거나 주상복합형 아파트에 살았으며, 최종적으로 원룸에서 산지 2년이 다되어 간다. 한국에서 아파트 거래가 부의 증식으로 최대 화두가 되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후반까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그래서일까? 내가 읽었던 신문에서 그리고 내가 가르침을 받던 스승에게서 그리고 주변의 어른들에게서 늘 들었던 한국에서 돈을 불리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의 결론은 ‘그래도 부동산’이었다. 여기서 부동산은 사실상 아파트를 의미했다고 봐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정부는 아파트가격을 잡기위해서 갖은 부동산 정책을 펼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니 사실상 부동산을 경기부양책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니 아파트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하지 않은 채 일관되지 못한 정책을 펼친 일종의 정부실패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치솟은 가격에 평생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든 하우스푸어도 넘쳐나는 것이 대한민국 부동산의 현주소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환경대학원 도서관을 거닐다가 교수님들이 어떤 책을 기증했을까가 궁금했다. 엄청난 양의 책과 논문을 읽고 글을 쓰는 교수라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좋다고 생각하며 학교에 기증을 했을지 확인하다가 ‘아파트에 미치다’를 보았다. 저자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기도 했지만 저자의 글을 다양한 칼럼을 통해서 접해본 본인에게는 아파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크기도 했다. 동시에 제목과 서문을 읽으면서 이제 나도 곧 다시 아파트에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간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국민의 보유재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산이 아파트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줄곧 금융상품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당장에 부동산 시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부동산 자체를 큰 자산이자 문화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심리를 더 자세히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충분히 그 심리에 대한 답변을 문화사회학적 시각에서 던져주고 있다.

 

 

          한 문화를 사회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늘 표면에서 나타나는 현상 이면의 모습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전상인 교수의 ‘아파트에 미치다’는 현미경의 렌즈를 ‘아파트’로 끼워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색다르면서도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이다. 이전에 저자가 편의점을 소재로 현대사회의 모습을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생활공간과 양식에서 하나의 문화를 읽어내는 점에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국민 전체의 70% 정도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아파트’라는 소재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화를 읽어내려는 저자의 시도는 분명히 큰 의미가 있는 시도이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 늘 주변에 보이는 풍경에 아파트가 들어 서 있다. 어느새 한국을 덮어버린 아파트의 역사를 조명하고 현황을 보여주며 이 책은 시작한다.

          한국의 아파트가 이렇게 널리 보급된 이유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아파트가 한국인들이 부를 축적하는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이제는 사회적 신분의 차별을 구분 짓는 사회적 잣대가 되어버린 아파트의 예를 찾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의 자산을 증식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상을 보이는 현대사회에서, 손쉽게 돈이 돈을 부른 아파트 장사에 모두가 뛰어든 현상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부동산에 돈을 쓰는 일을 한동안은 부동산 ‘투기’라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름 지었고 그 안에는 부동산을 통한 부의 증식과 사회적 신분의 차별이 이미 암묵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에게 불편한 진실이 되어가고 있음이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와는 별개로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는 관점에서 제시함으로서 현대 한국인의 삶에서 아파트를 나쁘게만 해석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개폐식 삶의 선택 가능성은 현대 도시사회와 같은 익명성이 난무하고 안전의 문제가 부상하는 사회에서 유용한 점이 분명히 존재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이들의 학군문제에서부터 회사, 사회적 신분의 정도까지 이제는 아파트가 한국의 빗장 공동체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기여하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어떠한 공동체를 해체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너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를 기준으로 사람을 일단 평가하고 들어가는 기준을 부닥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어떤 아파트에 산다는 표현은 어떤 커뮤니티 속에 살고 있는지를 들어내는 하나의 이름표와 같으며 어쩌면 그 사람 자신을 사회적으로 표현해주는 방법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외에도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도시 집중현상을 맞닥뜨린 한국 정부가 도시 노동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파트 위주의 공급정책을 선택하고 이후로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펼쳤는지, 외국에서 도입된 아파트라는 주거의 형태가 한국에 토착화되는 방식과 과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파트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한국인의 삶을 가정에서 성의 역할까지 어떻게 바꾸게 되는지를 공간사회학의 관점에서 읽고 있다.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아파트문화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을 시도하는 ‘아파트에 미치다’는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가 문화사회학이라는 관점을 견지한 채 아파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 한국사회의 주거문화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전혀 논문처럼 딱딱하지도 않고, 잡지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저자가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2007년 <아파트공화국>이란 책을 써 한국인들 보다 먼저 한국의 아파트 문화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줄레조가 던지는 질문 중 언젠가 나도 한번쯤 궁금했던 질문이 있었다. ‘서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까지도 아파트 거주를 왜 선호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서 외국의 대저택을 보면서 부러웠던 나는 한국에서 몇 십억의 돈을 주고 답답한 도심 속 아파트에 틀어박히는 한국인들의 행동은 아직도 크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어쩌면 그에 대한 답을 한국에서 살았던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의 관점에서 답해주는 책이 이 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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