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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저 이 책을 인문 에세이 중 하나로 평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펼쳐든 계기는 지난 학기 동안 수강했던 ‘도시사회론’의 참고문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수업을 통해서 참 많은 고민들을 떠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세상을 더 다양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해당 과목의 기말시험 문제 중 하나로 출제된 도시문화, 도시재생 등에 관련한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에 대한 의미에 대해 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도쿄 산책자>를 삽입했었다.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참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구이지만, 나의 결론은 도시에 축적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기억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고유의 문화가 ‘도시의 기억’이며, 그 고유의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고 새롭게 잘 조화시켜 재생시킬 수 있는 도시재생이 필요하다였다. 문제를 풀이해가는 과정에서 강상중 교수가 쓴 <도쿄 산책자>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언급했다.

 

 

<도쿄 산책자>에서 강상중 교수는 디지털시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꿋꿋이 버텨온 진보초 고서점가나 전통 있는 로쿠고 공연장인 요세나 가부키자 등에서 도시의 문화를 지탱하고 형성하는 도쿄의 문화 장치들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도쿄의 경제와 가치관과 문화의 변화를 읽어낸다. 도쿄가 가진 기억, 즉 과거 도시의 모습과 근대성을 읽음으로서 도시의 문화를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왜 도시의 현재 모습을 통해서 긴 시간 동안 축적되는 가치관과 문화를 읽어내려 했을까? 도시를 '문화의 컨테이너 혹은 용기(容器)‘로 명명한 미국의 도시 사회학자 루이스 멈퍼드의 이론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인류가 여태껏 쌓아온 지식과 정보를 보전하고 축적하는 장소로서 도시는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도시 전성시대인 현대에서 오히려 자본과 물자, 사람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식과 정보가 더 많이 충돌하고 그로인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가 발생하여 성장과 진보를 이룩해온 도시는 문화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라는 산물을 저장하고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커다란 컨테이너로서의 도시는 앞서 언급한 에멀슨의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겨울 서울시민청을 방문할 계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새 시민청사가 참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는 등의 여러 가지 건축적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서울 한 가운데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건물 하나가 생뚱맞게 있다는 위화감이 밀려왔다. 사실 우리는 현재 서울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여기가 서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특색이나 기억을 가진 공간이 부족하다. 한옥촌의 한옥들도 과거의 한옥들과는 모습이 다른 무언가 인공적인 느낌이며, 한국 전통적인 걸 모아놓았다는 인사동에 가서 한국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을 가지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한국전쟁 이후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60년 대 이후부터 서울의 도시 재정비과정에서 온 개발이라는 절대가치 속에서 서울 속 한국의 기억들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나는 시험지 속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 시절 기록한 ‘신화는 없다’를 언급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돈이 없어서 자신이 대학을 가기위해 겨우 책을 사본 청계천 책방들의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겠다고 싹 밀어버린 것도 개발의 가치관을 지닌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마치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들을 싹 밀어버리고 싶었던 마냥 말이다.

 

 

          <도쿄 산책자>는 인문 에세이다. 저자는 특정한 거리의 모습이나 역사를 훑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 자신이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의 2세인 자이니치로 태어나 성장하며 부딪혔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방인’으로 풀어내는데, 이 또한 일본이라는 공간에 살며 한 ‘인간’이 부딪히는 삶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 책의 시작은 저자 자신이었지만 나아가 도쿄라는 도시의 공간을 살아가는 일본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담담하게 읽어내고 있다. 도쿄 구석구석 직접 걸어 다니며, 현대인의 삶과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을 산책자의 시선으로 사색하고 글로 쓴 느낌이랄까. 마치 발터벤야민이나 게오르그 짐짐멜이 이렇게 도시의 모습을 관찰하지 않았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하게 어떤 지역에서 저자가 무엇을 느끼고 서술했는가에 대한 나열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느낌을 받았다. 문체 때문일까? 무슨 책과 닮은 것일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론은 신영복 교수의 <더불어 숲>이었다. 스무 살, 내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사서 읽었던 책인 <더불어 숲>은 옥살이를 마친 신영복 교수가 여행을 하며 느낀 사람과 문화 그리고 ‘장소’에 대한 에세이다. 모든 장소에는 고유의 기억과 문화, 냄새,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일반 여행에세이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표면적인 도시의 묘사에 치중하며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한편, <도쿄 산책자>는 (그리고 <더불어 숲>은) 내가 도쿄를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특정한 장소에서 직접 이런 문화와 역사, 사람을 읽어내고 싶게,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이 부분이었다. 도쿄 산책자가 특별한 책으로 다가온 부분은. 그리고 작년과 지금의 내가 다르다고 느낀 부분도. 다양한 ‘장소’를 직접 ‘걸으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통해서 세상과 삶을 읽어내는 넝마주의식 서술자 강상중 교수는 나에게 이제 발터 벤야민 만큼 특별하고 게오르그 짐멜 만큼 재미있는 저자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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