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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가난이 있었다. 나는 기껏해야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 두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위화가 풀어가는 중국인의 삶의 중심에는 가난이라는 슬픔이 존재했다. 한국의 정서를 한(恨)으로 표현하는데 사실 나는 위화의 소설을 읽다보면 중국의 정서 또한 슬픔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작가가 언제나 그의 소설에 표현된 중국인의 슬픈 삶의 감정들을 재치 있게 허탈하고 소박한 웃음으로 담담히 표현해내고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뿐이다. 다만 이전까지의 작품에서는 늘 중국의 근·현대사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번 <제7일>에서는 배경이 중국의 지금 상황을 배경으로 현실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렇게 적나라한 글을 써도 되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제7일> 출간 직후부터 읽고 싶었지만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후로 괜히 마음 놓고 소설책 한권 읽을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와 한숨에 끝내버렸다. 처음에는 조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사후세계의 배경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위화의 필력은 역시 독자의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제7일>은 주인공 양페이가 죽은 후에 만나게 되는 사후세계의 7일을 무대로 삼고 있다. 양페이가 사후세계에서 만나는 이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쫓아가다 보면 이 모든 사건들이 현재 중국 사회가 가지고 문제들과 엮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 쏙 빠져있는 여전히 시골이야기를 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현재 중국의 모습들이 오버랩 된다. 이는 분명히 작가 그간의 소설을 통해서 풀어오던 과거 근현대사의 문제와 그 속에서의 삶의 애환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적실성을 가진 중국문제를 소설을 통해서 드러내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그 문제를 맞닥뜨리는 지점은 사후세계에서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대기번호를 받는 과정에서도 A와 V같은 자본주의의 명암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죽은 후에도 재력과 권력으로 보다 질이 높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모습은 지금의 중국, 아니 현대사회 자체를 꼬집고 비틀면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양페이가 사랑했던 전 부인 리칭의 이야기 또한 사랑이야기로 보기에는 지극히 현실성 있는 중국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다양한 다큐멘터리에서 중국의 여성들이 재력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면접을 보고, 기업 입사를 노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시집을 잘 가기위한 노력을 다뤄왔다. 양페이와 리칭의 사랑은 지극히 평범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평범한 사랑이었다. 회사에서 인기가 많던 미인인 리칭은 수많은 재력가들을 마다하고 지극히 평범한 양페이의 진실한 마음만을 바라보며 그를 선택하여 결혼한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야망이 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양페이와 이혼을 하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채 성공한 다른 남자에게로 떠나간다. 떠나가는 아내를 잡지조차 못하고 무능해서 미안하다며 보내주는 양페이의 모습에서 참 위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운명 순응적인 주인공을 통해서 무기력하고 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간다고 할까. 둘은 사후세계에서 다시 만나는데 그녀는 결국 다시 떠나간다. 떠나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성공했기 때문에 영원한 안식처를 향해 친구들이 차려준 ‘성대한 장례식’을 향해 가는 것이다.

          아내와의 이별 후 양페이는 불치병에 걸린 양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집까지 팔아 최선을 다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시고 그는 쓸쓸하게 홀로 남게 된다. 이야기의 셋째 날에서 다뤄지는 양페이와 양아버지간의 슬픈 이야기는 <허삼관 매혈기>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도 그것을 노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 이야기를 애절한 부자의 정으로만 읽기에는 <제7일>의 일곱 번째 날까지의 구성 전체가 흔들리는 기분이다. 오히려 현재 중국이 가진 문제점을 중심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의 뒤편에 가려진 중국 하층민의 삶으로 해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친부모를 만나게 되는 양페이에게 평생을 바쳐 모은 돈으로 최고급 양복을 사주고자 하지만 수입 넥타이 두 개 정도의 돈 밖에 되지 않는다는 모습은 참 씁쓸하다. 뿐만 아니라 셋째 날에서 등장하는 ‘리웨전 아줌마’와 ‘스물입곱 구의 영아들의 시체’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의 의료정책과 영아를 의료 폐기물처럼 물건 취급하는 듯한 중국사회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흔히 한국의 인터넷에 떠도는 ‘대륙’의 이야기가 아니 땐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중국인 작가의 손끝을 통해서 드러난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위화는 주인공과 죽은 또 다른 이들의 교차점을 통해서 중국의 현대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평생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집을 살 여력이 안 되고, 여자친구가 갖고 싶어 하는 아이폰을 살 수 없어 모조품을 선물하고 진품으로 속였다가 벌어진 ‘슈메이’와 ‘우차오’ 커플의 이야기는 참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 아이폰이 짝퉁이라는 사실을 알고 슈메이는 자살소동을 벌이다가 실제로 죽게 되는데 이런 ‘슈메이’의 무덤을 사기위해서 ‘우차오’는 자신의 작기를 팔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에서 나는 라오스 생활에서 만나던 젊은 라오스인 친구들이 많이 떠올랐는데, 자신의 경제수준에 맞지 않는 외제차, 아이폰, 장식품 등 도시를 바탕으로 한 소비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을 대변하는 장면 같았다. 이는 몸을 팔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의 친구의 예를 들며 편하게 살기 위해 자신도 몸을 파는 가게에 나가겠다며 커플이 다투는 장면 등을 통해 작가는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나타나는 허영심과 잘못된 욕심이 발로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공무원들이 모여 사는 장소 두 곳이 아니면 모두다 음식으로 장난친다는 에피소드나, ‘탄가네’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는 음식점을 운영할 수 없는데, 뇌물을 주다보니 3년 내내 적자가 나는 상황, 그러다 보니 가게에 불이 났는데도 손님들을 못 나가게 막고는 돈을 내라고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중국 공무원들의 더러운 단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또 백화점 화재로 ‘서른 여덞 명의 해골’에 대해서 사망 숫자를 축소 발표하는 중국 당국의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들을 소설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라운 점이다. 중국 정부는 위화에게 어떠한 압력도 가하지 않는 것일까?

          책 표지를 넘기고 처음 만나게 되는 문구는 창세기의 구절이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단순히 <제7일>이라는 제목 때문에 창세기 구절을 삽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위화가 <제7일>을 통해서 자신이 그리는 중국 사회의 이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라는 대목을 통해서 돈이나 권력을 떠나서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중국인의 삶을 위화가 그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사후세계의 중간에서 모여 있는 그들의 삶음 살아서도 행복하지 못했고 죽어서도 행복하지 못한 모습이 아니던가? 위화는 어쩌면 7일간의 여행을 통해서 지금 현재 중국 여기저기를 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국 하층민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인 삶의 애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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