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라고 하기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비가 내리는 오후, 황농문 교수의 ‘몰입(Flow)’를 펼쳤다. 라오스에서 생활하면서 황농문 교수가 TV에 출연해서 몰입에 관한 강의를 하는 영상을 봤었고, 당시 커다란 감동이나 영감을 얻지 못했었기 때문에 읽지 않으려던 책이다. 삼성전자 적성시험을 하루 앞둔 지금,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문제집을 푸는 대신에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이 책을 들었다.(사실 큰 부담감 없이 시험을 치루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은 조금 전 황농문 교수가 에필로그에 적은 말이 마음에 남았다. ‘해야할 일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다라는 작가의 말.
요즘 EBS에서 아주 재미있는 기획영상을 하고 있다. ‘검색보다는 사색입니다’라는 시리즈 인데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기기에 익숙해져서 점차 더 사라져가는 가족과의 대화, 검색과 대조되는 사색의 기쁨, 디지털 책 읽기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을 다루는데, 올 초에 읽었던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전개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매일매일 다운받아서 보고 있다. 결국에는 점차 우리가 자기 앞에 주어진 문제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문제해결을 위한 몰입을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꼬집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다. 물론 이 주제에 관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요즘은 너무 많은 분야를 알아야만 하고, 그때그때 알지 못하면 뒤쳐지는 기분이다.’라는 압박감과 함께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아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만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의 통로로 향하는 길’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까지 이에 대한 의견은 다양한 것 같다.
황농문 교수의 ‘몰입’이 가벼운 책이 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책의 전반부까지는 저자의 경험을 스토리텔링으로 전하며, 공감을 사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조금은 사이비적인 냄새까지 났었다. 세계적인 난제를 해결했다는 교수가 자신이 경험했고 자신의 학생이 경험했으니, 몰입은 좋은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간단한 뇌과학적인 지식과 함께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곁들이며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어서, 저자와 그의 제자,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기타 다양한 석학, 경영자 등의 경험담을 단순한 하나의 우연한 현상이 아닌 누구나 경험 가능한 가능한 무언가로 다가왔다.
또한, ‘몰입’이라는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황농문 교수의 섬세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몰입에 너무 빠져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1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던가, 학생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각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해서 적절한 코멘트를 가미해서, 몰입을 연습해보려는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점에 대해서 미리 배려를 해놓았다. 또한 직장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까에 대한 고민에서, 현실적으로 힘든 다양한 회사상황들에 대한 저자의 고민들 또한 세심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류의 서적에서 대부분의 저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바빠서, 각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제시하지 않고, 일반화된 방식만을 제시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몰입’을 해보고 싶게 만든 이유는 저자가 몰입을 단순히 일의 성과를 높이는 하나의 방편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대로 삶에 즐거움을 채우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가치관의 발전 방편으로 몰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책을 덮자마자 나는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상황을 넓은 종이에 하나하나 적어가며 저자가 제시한대로 가능하면 천천히 생각해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며칠간 계속해서 천천히 생각해 볼 것이다. 바쁜 세상이라는 핑계로 나 역시 어려운 문제에 맞지 않게 무작정 빠르게 답을 찾기 위해서 조급하게 생각하고, 답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에서 해답을 찾겠다며 산만하게 내 속의 해답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과거 SOP를 쓸 때, 내가 해온 모든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1달 가까이 천천히 그것만 정리해서 나름 만족했던 답을 얻었던 경험을 나는 왜 잊고 있는가? 그 SOP를 읽으면서 내 28년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에 기뻐하고 삶의 방향을 더 높게 맞추며 기뻐하던 나를 왜 잊고 있었을까? (비록 그 대학원에 낙방했지만…)
아끼는 지인이 자신의 작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준 적이 있다. 그의 작은 아버지는 정말 한국에서 잘나가고 대단한 이름만대면 알만한 어떤 그룹의 회장님이신데, ‘답이 나오지 않아? 그러면 고민해라. 그래도 안되면 더 고민해라. 그래도 안되면 더욱더 고민해라.’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사실 그 작은 한마디가 요즘 내가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에 품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손에 잡는 순간 다시 한번 온 몸으로 Think Hard!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P.S : ‘해야할 일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의미에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일이 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외부의 문제에서만 문제점을 찾고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자신을 다독이기만 하기보다는 좀 더 그 상황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자신이 선택한 일에 몰입하는 일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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