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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시골 냄새가 난다. 동시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위화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비슷한 감정의 덩어리들이 마음 한구석에 박혀 움직이질 않는다. 9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어느밤 침대에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 갔던 책이 있었다.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 였다. 왜 이런 경험한 적 없는 타국의 한()이 마음에 와닿을까 고민해 본다. 어쩌면 영화로 접해왔던 낯설지 않은 중국의 시골 풍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결국 매한가지 희노애락에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사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근대화 과정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가 어젯밤 마음 속을 후벼팠다.

 

 

 

소설의 원제인 활착(活着)이란 단어는 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작가는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작품에 대한 짧은 설명을 한다.

 

 

1) 개인과 운명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감동적인 우정이다.

2)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4) 중국인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액자식 소설로 구성된다. 중국의 민요를 수집하러 취재다니는 한 남자가 만난 '푸구이'라는 노인의 입에서 풀려 나온 자신의 인생이야기다. 이 형식을 취한 덕분에 문체는 훨씬 쉬워졌다. 옆에서 이야기 들려주는 듯한 문체를 택함으로써 책장은 1분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 넘어간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젊은 시절 도박빚으로 가산을 탕진한 지주집 아들 푸구이는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내인 자전 또한 친정으로 끌려가게 된다. 딸 펑샤를 낳아 돌아온 자전을 보며 푸구이는 자신의 밥벌이를 하기 위해 부지런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운이 나쁜 걸까? 성으로 물건을 사러 들어갔던 푸구이는 군에 끌려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속으로 몰려 전쟁터로 나가게 된다. 공산군의 우세로 전세가 기울자 푸구이는 공산군에게 항복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없다. 남은 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한 푸구이의 아들은 성내 현장의 아내를 위해 피를 뽑다가 병원에서 죽는다. 문화대혁명 운동이 일어나고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앞잡이라며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한다. 이에 푸구이는 가산을 탕진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모습이 저랬을 거라며 삶의 기구함을 이야기 한다. 농아이던 그의 딸 펑샤는 성내의 얼시라는 사내에게 시집을 갔지만 아이를 낳다가 과다한 출혈로 동생이 죽었던 그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얼마 있지 않다가 푸구이의 아내인 자전 또한 세상을 뜬다. 그리고 그의 사위 얼시와 손자인 쿠건 또한 죽게 된다.

 

 

 

 

이 소설은 위화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묻어난다. 그래서 서평 처음에 나는 구수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주인공의 이름인 '푸구이' '복되고 귀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노인의 진흙탕 같은 삶을 반어적으로 재치있게 붙인 이름이다.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좀 더 지식이 있었다면 당시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전혀 그런 배경따위가 이 책을 읽는데 난관이 되지 않는게 또 장점이다. 요즘 사는게 고달프다. 되는 일도 별로 없고 웃을 일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럴 때 푸구이가 취재하는 이에게 정리하며 했던 말은 조금 잘 살아보겠다고 조금 더 잘나보겠다고 아옹다옹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바탕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높게 될 뿐이라네. 나를 보게나. 말로 하자면 점점 꼴이 우스워졌지만 명줄은 얼마나 질기냔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죽고 그렇게 다 떠나갔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p278-279

 

 

 

이 책은 처음에 '살아간다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을 원작으로 제작된 장예모 감독, 공리 주연의 영화 '인생' 199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료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어판 제목을 영화에 맞춘 것 같다. 이런 경우 조금 화가나는 게 출판사 멋대로 제목을 바꾸면서 과거에 읽었던 책을 찾을 때 헷갈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다 읽고 나면 한국 근대 소설인 '수난이대'와도 비슷한 느낌이 남는다. 기구한 근현대사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의 고달프고 슬픈 삶이랄까. 하지만 수난이대에 빠져있는 무언가가 하나 더 채워져 있는 기분이 든다. 어찌보면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는 느낌.

 

 

 

위화 작가의 또다른 소설인 '형제'는 아직 읽어 본 적 없지만 곧 읽을 예정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인생
국내도서>소설
저자 : 위화 / 백원담역
출판 : 푸른숲 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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