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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 한씨연대기, 모랫말 아이들, 바라데기황석영 씨는 잘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작가이다. 몇몇 작품들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도 실려있어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이들이 수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내 마음속에서 수험전용으로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삼포가는 길한씨연대기를 쓴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유년기는 어떠했을까?

 

             나츠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 소세키는 산시로의 누구나가 겪는 보편적인 유년기의 고민을 던져주었지만, 다소 어려운 사상들을 들먹여 나로썬 머리를 긁적이는 경우가 많았다. 황석영 씨는 개밥바라기별에서 유년기의 사랑과 우정은 물론, 그 시대의 상황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함께 실제 자신의 유년기의 경험을 녹여 작가의 말에서 그가 말한대로 ‘젊고 어린 독자들과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작품’에 대해 고민한 그의 흔적들이 보인다. 누구도 머리를 긁적이지 않을 작품이랄까? 예순이 넘은 작가가 자신보다 어린 독자들에게 자신이 겪은 또한 독자들이 겪고 있을 속깊은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로 어떻게 풀어나갈까 라는 생각은 책을 읽기 전부터 내 관심거리였다. 보통 나이가 많아지면, 그들은 젊을 때의 감정과 고민이 자신에게는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이야기하거나 동떨어지게 이야기하니까.

 

             개밥바라기별은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진술을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다양한 화자들의 회고일기형식으로 풀어냈다. 비슷한 또래의 다양한 화자를 선택했다는 일은 누구나 이 나이에 똑같은 생각으로 고민하고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를 통해 그 나이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고민들을 보여준다. 엄청나게 힘든 상대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닐까. 그때 내 속에 무슨 공간 따위가 있었고 거기 어머니가 차지한 곳을 밀어내려고 애를 썼는데 전장에서 돌아올 무렵에는 이미 모든 공간이 사라져버렸다(p22, ).’ 난 수없이 내 속에서 어머니를 밀어내려고 했던 한 사람으로써, 같은 시기에 수많은 고민을 했었다. 인생의 반은 부모에 의해서 망쳐진다고 했던가? 방황하던 시기에 어줍잖게 주워들은 저 한 문장은 마치 부모가 내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끊임없이 부모라는 존재를 내 속에서 밀어내는 작업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나 자신의 길에서 한 번쯤은 벗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주변에서 돌아오는 차가운 시선과 비소 섞인 걱정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오거나, 아주 어긋나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의 원래 의도는 ‘시키는 대루 하기 싫어할 뿐이지 나두 노력하고 있어.(p.40, 영길)’라고 말한 준의 입장과 같지 않을까? 지금 내가 이집트 여행을 하며 입는 등에 ‘人生ほっとけ(내 인생이다. 내버려둬!)’라고 적힌 티셔츠의 문구처럼 나 역시 세월이 좀 지체되겠지만 확실하게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p.40, 영길)’준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개밥바라기별의 후반부에서는 준은 직접 노동하여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보람차고 즐거운지를 몸소 느낀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접경험이라는 달콤한 말에 유혹되어 머리 굴리며 생각하고 책만 읽으면 자신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는 글씨만 쓰구.(p.41, 영길)’ 내 인생이 어떤 지는 보지 않고 잘되지 않을 때는 모든 사회제도와 정치 문화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말처럼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로운(p284, 작가의 말)’ 일이다. 독립운동에서 쓰는 ‘독립(獨立)’이라는 고귀하고 이상적인 단어를 쓰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좌절하고,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귀한 가치들’의 끈을 놓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듯하다. 여전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귀한 가치들을 찾아 외길을 걷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험난하지 않을까? 당장에 나조차 몸을 사리고 다치지 않으려는 길을 찾는 마당에 나를 포함한 그런 이들을 비난만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발언이다. 그건 그때 가서 몸으로 때우든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흔적들을 치우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는 각오를 하구 있어(p.74, 인호). 사실 난 혼란스러운게 나의 어버지는 실수의 흔적들을 모두 용납하시고 끝까지 나를 믿어주지만 가능하면 편한 길을 걷도록 도와주시고 권유하셨다. 그래서 인지 실수를 할 때 마다 나에게는 작지만 좌절들이 왔고, 다시는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아서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피해가는 경우도 아주 많다. 뭐가 문제 일까? 작가는 여기서 ‘각오’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부끄럽게도 나 자신에게 어떤 ‘각오’를 해보았는가를 묻는다면, 난 습관처럼 딴청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독립투사들은 어떤 ‘각오’로 독립을 위해 싸웠을까?

 

             이 소설은 단지 이런 무거운 나 자신과의 대화만을 이끌어내지 않고, 어릴 때 내가 가졌던 별처럼 마음속에 빛나고 있는 연애감정의 기운까지 다시 불어 일으켰다. 벌써 두 해가 흘러버렸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은 책에서 상진이의 연인처럼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또한 그녀는 직업도 있고 집에서 자꾸 선을 보라고 하는 책 속의 여인과 똑같은 처지에 있었다. 나는 아직 생활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를 얘기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들 어른 흉내내기의 굳건해 보이던 지반이 일시에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성인으로 들어가는 입장권 같은 건 더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p.118, 상진).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졌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던 본인에게는 20대 초에 일어난 최악의 사건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집안의 반대라는 상황을 겪다니. 그 해 겨울 새로운 중미로의 새로운 여행길에 올랐던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결국 나는 사회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p.183, ). 어떤 위치에도 독립된 존재로 서있지 않았으며, 나라는 존재의 가치조차 아직은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었다. 2008 1 1일 과테말라 밤 하늘에 쏘아 올려졌던 수억 개의 별들 아래서 나는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재수를 할 때였다. 함께 하던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다. ‘니 이야기를 좀 해봐’. 나는 사실 그 당시에 그런 인식 자체는 없었지만 무의식 중에 ‘지금 생활이 싫으니까(p.243, 미아)’라고 말하던 준의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나에게 재수를 하던 시절의 수많은 시행착오들과 쓸데없는 작은 관심거리들이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그 당시 나는 재수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으니까. 그래서 난 미아가 준에게 요구하던 ‘내가 지금 행동하고 살고 그런 중심으로 얘기(p.243, 미아)’를 한다는 사실은 불가능 했는지도 모른다..

 

             난 현재 이집트 다합(Dahab)에 있다. 다이빙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다이빙을 하고 있다. 너무너무 즐거워서, 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다시 찾은 이 곳인데, 매일매일 반복되는 다이빙과 정해진 패턴으로 이야기하는 여행자들의 무용담들은 절로 하품이 나오게끔 한다. 40년 전 김찬삼 교수가 지었던 세계여행기 열 권을 다시 한 번 읽는 편이 훨씬 좋다. 한동안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이 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8월 중순까지 일을 해주기로 해서 선뜻 떠날 수도 없다. 그러던 찰나 한 여행자에게서 난 개밥바라기별을 받아 읽었다. 타는 듯한 태양과 사람의 몸을 늘어지게 만드는 이집트의 날씨에서 나는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p.257, )’이라고 말하는 대위를 본다. 지난 몇 해간 나를 억누르던 내 인생에의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서였을까? 나는 이 생생한 기쁨조차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기존의 제도나 사회의 틀 속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흐리멍텅하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내 자신이 뭘 원하는지 바라볼 수 있는 시간들을 헛되게 보내고 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값진 경험들을 등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내 가슴 깊숙이 끌어안지 못했다.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20대의 반이 넘어가는 올해조차 ‘자신을 다시 발견해가는 과정(p.274, )’을 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한 달 전 함께 다이빙을 하는 동료에게서 ‘너는 삶에 필요한 기술은 많은데, 그 안에 너 자신이 없어’ 라는 말을 들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발견했을까? 나만 늦은거면 어떡하지라는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투정을 스스로에게도 부려본다. 계속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것부터 해야지.’라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내 마음속에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산다.(p.282, )’는 말이 대롱대롱 걸려버렸다. 나의 인생도 소설의 마지막에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중일까? 그렇다면 어디쯤 온 것일까?

 

             마지막으로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어른들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하지마라.(pp.285 작가의 말)’고 말해준 황석영 작가에게 감사하며, 오늘밤 홍해바다가 넘실대는 이집트 시나이(Sinai)에서 개밥바라기별을 찾아본다.

 

 

2009년 이집트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버로 활동하던 시기에 맥주 마시고 썼던 리뷰를 다시 끄집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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